임춘성 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 교수
드디어 기다리던 2007년이 왔다.
2006년 말미에 장만한 2007년 다이어리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이미 낯설지 않다. 2007년 해야 할 일들, 꼭 이루어야 할 일들, 만나야 할 사람들, 감사해야 할 사람들, 그래서 계획하고 다짐한 것들로 벌써 많은 지면이 빽빽해졌다. 이렇게 내 주위의 일, 사람, 세상을 둘러보며 다이어리를 채워나가다가, 문득 내 주위가 아닌 나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많은 일을 합리적인 계획으로 다시 시작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합리적인가.
어떤 사람이 합리적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논리적인 사람은 합리적이다. 우리가 초중고등 교육에서 그토록 수학을 열심히 배우는 것은 꼭 수학자가 되기 위해서나 수학을 이용한 학문을 업으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다. 논리의 최고점에 수학이 있어, 논리 하는 사고를 인성적으로 학습하기 위해서도 배우는 것이다. 사고의 선후관계과 상호관계, 그리고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논리적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은 분명 합리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논리로 무장된 사람만큼 비합리적인 사람도 드물다. 나와 같은 교수나 전문가에게 많이 나타나는 경우로, 흔히 `소신있는' 논리로 남과 세상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의외로 자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두 번째로 상식적인 사람도 합리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합리라는 단어가 합당한 세상의 이치를 의미한다면, 이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지식과 식견 즉 상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상식이 있는 사람, 상식이 통하는 사람은 상식으로서 대화하고 상식을 준거 삼아 의견의 차이를 좁힐 수 있으니 합리적이라 하겠다.
단,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상식이라 믿는 것이 과연 상식인가이다. 급변하는 세상의 특정 시점에서 다수의 생각이, 또는 특정 사안에서 다수의 이익을 위한 생각이 무조건 상식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설령 자신이 그 다수에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오랜 기간 통용되는 이치를 반영한 상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합리적인 사람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그 폭을 넓혀 예측 가능한 사람도 합리적이라 부르고 싶다. 항상 적절한 논리로 사고하거나, 늘 세상의 이치에 맞는 상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더불어 사는 우리네 인간사에 그래도 예측 가능한 사람은 견딜만한 사람이다. 사고와 행동에 일관성이 있으니 약간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과 약간의 인간미를 인정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합리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적어도 그들을 상대하는 합리적인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논리적 또는 상식적이거나 예측가능함을 포함한 넓은 의미라면,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를 그리고 상대방을 합리적인 사람이라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도대체 왜 우리는 종종 일상에서, 신문에서, 뉴스에서 우리 사회가 합리적이지 않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일까.
새뮤얼 스마일스는 생각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성격을, 그리고 성격은 운명을 만들어 결국 생각의 씨앗이 운명을 거둬드린다고 했다. 또한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당신은 사는 대로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폴 발레리는 언급했다. 개개인 생각의 중요성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얘기이다. 그러나 대화와 소통이 더욱 다양해진 디지털 사회에서는, 개인의 사고방식의 결과를 그 개인 자신의 운명과 삶으로만 귀착시키는 격언은 어딘가 허전하다. 더욱이 그 개인이 조직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동이 튼 새해에 다짐해 본다. 더욱 논리적이고, 상식적이며, 예측가능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합리적인 사람을 존중해야겠다. 합리적인 지도자와 함께 시스템적인 사회를 만들어가야겠다. 그러면서 재차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겠다. 우리는, 나는 합리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