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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경영, 윤리로는 부족하다
출처 http://www.dt.co.kr/contents.htm?article_no=2006050902012269619003 작성일 2012-04-11

임춘성 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 교수 

 

8년 째 애지중지하며 타고 다니는 내 차를 만드는 회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자동차 회사이다. 국내 시장점유율로 보나, 해외 지명도로 보나, 자동차산업 발전공헌도로 보나 최고이다. 그래서 모두 좋아하는 자동차이고 인정하는 회사이다. 그런데 그 회사의 총수가 최근 구속되었다. 찹찹한 마음이다. 굴지의 기업들이 번갈아 도마 위에 오르니 우리는 답답한 마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가와 기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자리를 창출하여 국민을 생존하게 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여 국민을 행복하게 한다. 이념의 장벽이 무색한 지금, 국가 간 국경 없는 전쟁은 군대가 아닌 기업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을 종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즈니스' 주체로 보는 부정적 시각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기업의 일차적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실리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이익집단이다. 명분을 중시하고 사농공상의 순서를 매긴 유교적 사상의 심오한 이치를 간과한 어설픈 적용이 기업의 존재를 평가절하 한다. 실리 중심의 기업의 경영방식에 명분 중심의 유교적 잣대가 사용되곤 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수년전 미국인 친구가 신문에 나온 사진을 보며 의구심을 표현한 적이 있다. 지면과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으로, 기업체 사장과 노조위원장 등이 윤리경영 헌장을 낭독하는 사진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투명한 기업경영과 이를 통한 사회적 공헌을 결의하는 상징적 행사라는 설명에도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IMF 구제금융을 거치며 뼈아프게 배운 것은, 국가와 기업의 경영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형식과 절차에 의하여 기업을 운영하여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경영혁신과 구조개선을 수행했고, 이를 실천하게 하는 ERP와 같은 정보시스템을 도입했다.

 

세계의 맹주 미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흔히 기업개혁법이라 부르는 SOX(Sarbanes-Oxley Act)를 2002년 이후 단계적으로 발효시켰다. 미국 증시에 등록된 기업은, 기업의 재무상태를 변화시키는 업무 프로세스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기업의 이해관계자가 지속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이다. 이제는 단순 재무 결과치 뿐 아니라, 결과를 창출하는 업무 과정의 투명성에도 CEO와 CFO의 형사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결코 윤리경영 헌장의 공표 여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의 윤리경영은 윤리적인 상징성만으로는 부족하다. 회사를 이끌어 가는 경영진의 의지와 각오가 아무리 중요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 선진 업무시스템과 이를 구현하게 하는 정보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주주, 경영자, 종업원, 협력업체, 고객, 그리고 정부의 6대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정보화 투명경영(e-Transparency)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는 리딩 그룹, 즉 정치가, 관료, 법조인, 학자, 문화인, 언론인 등등 중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기업가의 무게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급격한 발전을 이룬 우리 현대사의 그림자이자 업보인 정경유착, 재벌특혜와 세습지배구조 관행이 아직 말소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묵묵히 국민에게 일자리와 상품을 제공하는 기업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윤리경영을 기업가의 윤리의식에만 의존하는 발상은 공허한 것이다. 무한책임을 지닌 윤리의식을 유한책임을 지닌 대주주에게 무조건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윤리경영에 있어, 윤리에 대한 의지는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천은 시스템으로 하자. 그래서 궁극적으로 기업가와 기업을 자유롭게 해주자. 금년에는 차도 바꾸어야 하는 데, 더 좋은 차를 더 싼값에 만들어 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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